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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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곧 명상임을 아시나요? - 신중재일 화엄법회(음10월) Feat: 선공스님(자연명상마을 교육국장)

선공스님의 법문 내용입니다 오대산은 언제나 많은분들이 보궁도 참배하고 기도동참하여 정성을 다해 수행정진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불보살님의 가피로 여러분의 소망과 발원을 성취하고자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기도할때의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마음이였나요? 부처님 저의 소원을 이루게 해주십시요.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바른깨달음을 이루겠습니다, 아니면 오직 부처님을 생각하며 일심으로 염불을 하셨나요? 기도는 정성과 간절함으로 일심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대로 나의 마음을 모아 불보살님과 주파수를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로 내 마음이 청정해진 일심의 마음과 불보살님과 교감을 하게됩니다.
 
그 일심에 마음은 청정한 마음이며 나다/너다/ 있고 없고 분별과 차별이 없으며 정해진바가 없으며/ 우리 몸을 끌고 다니기에 주인이지만 마음은 찾을래야 찾을수 없어 비어있기에 주인공이라고도 합니다. 주인공 마음에는 분별이 쉬고 크기가 헤아릴수 없어 온허공이 담길듯 하며 그대로 내마음에 불보살님이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이 서게 됩니다. 이것을 불교수행에서 견도(자신의 본성을 보는 단계)라고 합니다.
 
유교의 가르침에서도 “천하무이도, 성인무양심이라, 세상에는 두가지 도가 없고, 성인은 두가지 마음이 없다. 라고하여 진리의 세계, 성인들의 깨달음의 세계는 차별/분별을 여의고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 청정한 일심, 허공과 같은 텅빈마음의 본성을 깨달으신분들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며 이와같은 일심에 마음, 텅빈 공덕의 마음을 깨닫는것이 최고의 공덕을 짓는 것이며 이 마음에는 어떠한 씨앗을 심어도 잘 자랄 수있는 복밭과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일심에 마음 청정한 자신의 본성을 깨닫게 되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 자비와 지혜입니다. 그리고 일심가운데 사무량심과 육바라밀이 갖추어짐을 알며 육바라밀을 실천하며 복밭에 심은 우리의 발원과 소원의 씨앗을 키우고 결실을 맺게합니다. 그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물론, 아직 자산의본성을 깨닫지 못했다고 해도 사무량심과 육바라밀을 실천하면 우리의 본성을 드러나게 하는 공덕을 닦는 수행이기도 합니다. 이제 저에 안내에 따라 네가지 고귀한 사무량심과 육바라밀의 마음이 발현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소서. 더하여 행복에 인연을 짓게 하소서. 모든 존재가 괴로움에 벗어나소서. 더하여 괴로움에 인연을 짓지 않게하소서. 모든 존재가 고통을 넘어 행복에 머물게 하소서. 더하여 행복에서 멀어지지 않게하소서. 모든 존재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분별심을 내려놓고 평등심에 머물게하소서.
 
(육바라밀)
이어서 육바라밀에 바라밀은 완성의 의미이며 집착함이없고 머무는바가 없는 마음을 반야지혜라하고 우리의 텅빈 고요한 마음에서 반야지혜의 작용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육바라밀의 실천을 통해 생사윤회속에서 아주 작은 선행도 놓치지 않는 이를 ‘보살’이라고 합니다.
 
첫번째 보시바라밀은 반야의 생모이며 차별없는 가운데 자비한 마음으로 다른 이에게 능력껏 아무런 조건없이 베풀어 주는것입니다.
 
두번째 지계바라밀은 반야를 키워주는 ‘유모’와 같으며 신구의 삼업을 청정하게 하는 것으로 욕망에 흔들리지 않고 불선업을 멀리하고 선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세번째 인욕바라밀은 반야를 아름답게 장엄하는것으로 현재 나에게 닦친 일도 내가 과거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짓은 업보의 결과임을 알아 업보의 인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내의 마음을 갖는것이고 양심에서 어긋나는 일에 물러서지 않는 용기도 인욕입니다.
 
네번째, 정진은 반야를 더 수승하게 하는 양모와 같으며 발원과 소원이 있다면 어떠한 씨앗도 잘 자랄수 있는 복밭에 씨앗을 뿌리고 잘 가꾸어 좋은 결실을 맺도록 하는 부지런한 노력입니다.
 
다섯번째, 선정은 반야를 세탁하는 것과 같아 일상의 경계에 나의 본성을 잃어버렸을 때 기도와 수행을 통해 번뇌망상을 내려놓고 분별없는 청정한 본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여섯째,지혜는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아는 것이며 있는그대로의 세상의 존재실상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이 이해가 되지는지요? 우선 기도하는 분에 따라서 발원과 소원은 하나이지만 불보살님께 공양을 올리고 발원을 하면서 일심으로 염불하며 나와 상대라는 차별없이 소중한 관계속에 함께한다는 전체적 안목을 갖추고 청정한 본성의 마음 허공과 같은 한량없는 복밭에 나의 소원과 수행 발원의 씨앗을 뿌리고 사무량심과 육바라밀의 실천을 통해 내가 뿌린 씨앗이 잘자랄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가면 좋은 공덕인연의 결실을 맺게되는것입니다.
 
이어서 명상에 대해 말씀드리면 명상은 어둡다. 눈을 감다 그리고 상은 생각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마음이 차분한 가운데 또렷히 깨어있는 것/이것이 명상에 의미가 됩니다. 이 깨어있다는 것은 수행용어로 사띠 ‘알아차림’이라고 하는데 알아차림은 마음에 주의를 한곳에 머물고 현재 몸과 마음 주변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마음의 눈으로 있는그대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기도를 하시면서 일상가운데 불보살님을 생각하며 일념으로 염불을 하시죠. 마음을 한곳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부처님을 생각하며 내마음과 하나가 되면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그리고 고요한 가운데 자연스럽게 나의 몸과 마음 주변에서 일어나는 경험이 알아집니다. 이때 경험을 있는그대로 관찰하는 것을 통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도 고요함과 통찰(지혜)를 함께 닦는다하여 정혜쌍수하고 합니다. 불자님들께서 기도를 하신분들은 마음이 고요해지고 청정해지는 일심 경험은 다하시는데요.
 
일상의 경계에서 내가 쓰고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본성은 생각과 분별을 떠난 일심 허공과 같은 마음이기에 본래 우리 본성을 자각하면 바로 일상 경계에서도 일어나는 생각은 마치 잔잔한 바다에 바람이라는 조건으로 일어나는 파도의 모습이며 ,파도도 또한 바닷물이 본래모습 성품이듯이 청정한 본성에서 일어나는 번뇌는 그대로 지혜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에 본성을 알지못하면 일어난 생각과 감정이 나라고 여기면서 괴로움과 불안, 슬픔등 마음이 번뇌망상에 영향을 받아 세상을 있는그대로 보지 못하고 고정관념과 자신의 업성에 따라 보게됩니다.
 
이때 바로 내가 경계를 만났구나, 마음에 번뇌망념이 일어났구나 알아차리고 이 마음이 탐심인지 성냄인지 어리석음인지 마음을 살펴보고 염불을 다시 챙기셔도 되고/ 이 생각이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인지 조건을 살펴보고 염불을 챙기시고/ 또, 모양과 마음 의 경계가 조건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연기적 존재로서 무상하며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는 무아임을 알아서 바른 정견으로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고 염불하는 현재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우리가 수행이란 일상가운데 항상 깨어있는 것이며 그것은 기도나 참선이나 명상이나 똑같으며 내 자신도 깨어나고 남도 깨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일상에 경험에서 우리의 본래마음(불성, 자성,본성)을 잊지 않으며, 일상의 순간순간 경험을 무상,고,무아로 비추어 보고 자신을 점검하고 성찰하며 번뇌를 조복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기도를 하면서도 일상에 경험에서 나의 몸과 마음에서 경험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분별없이 염불이나 기도하면서 몸과 마음에서 경험을 관찰하면서 불선업을 놓아버리고 선업을 닦으면 그대로 청정한 본성을 알아차리는 명상수행이 되는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월정사 님에 의해 2022-03-11 16:22:36 새해맞이 철야용맹정진 에서 이동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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